세미나 Ⅱ – 최빛나
종종 내가 작품과 관객을 매개하는 중개자가 아니라 관계자와 관계자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그냥 중간자같다. 언제부터 내가 좋아하는/싫어하는/기타 등등 미술의 기준을 제도로 세우고 있었을까? 나는 누구의 입이 되고 싶으며, 어디에 나를 두길 원하는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미술이 제도 안에 있는 게 아니며 나 역시 그 안에만 나를 두고 싶지는 않다. 그럼 다시, 미술에서 내가 바라는 건 무엇이고 그와 별개로 내 삶은 어떻게 지탱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하는 일과 나를 분리할 수 없는데 그 일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어떡하지? 다른 사람들은 미술을 왜 하고 왜 전시를 만들고 왜 사람을 만날까?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어찌되었든 경험 안에서 선택과 기준을 세우는 것밖에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내게 던지듯이 거기서 해결되는 과거의 질문도 있을테다.
– 한문희 (DCW 2025)
지금까지의 큐레토리얼 실천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준비하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모호한 경계 안팎에서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했다. 공들인 시간과 노력, 애정과 진실한 마음과는 별개로, 역할과 성과에 따른 적절한 몫이 있기 마련이니까.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뒤, 결국 진짜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력서에 들어가는 프로젝트명과 크레딧 몇 자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것. 시간이 지나고 포장과 껍질을 벗겨내야 비로소 그 속을 보이는 것. 관계, 기억, 감정, 이야기, 배움과 탈-배움.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붙잡히지 않아 우리를 괴롭게 하지만, 결국 이를 오래도록 지속하게 만드는 힘은 잠재태로서 바로 그런 것들이기에, 이 소리 없는 시간들을 더욱 감싸안고 믿어주기로.
– 전지희 (DCW 2025)
나의 자기소개서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쌓이고 있음에도, 그만큼 시간이 흐르고 있음에도, 나의 경험이 바스라지듯 사라진 것 같은 기분과 증발된 기억이 머물렀던 자리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세미나에서 세 명이 각자 걸어온 경로를 이야기하며 각자의 마음에 가장 길게 남았던 순간은 어떤 주제였는지, 어느 작가와 함께 했는지가 아니었다. 자연을 마주하던 짧은 찰나에 감각했던 낯선 소리, 함께 읽고 고민하며 만들었던 밀도 높은 대화 시간 그리고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았기에 ‘이 다음’을 결심하게 만든 물음표였다. 해소되지 않은 의문들 사이로 새겨 나가고 있는 여러 개의 물음표 사이, 그 비어 있는 행간에 나는 어떤 답을 내리게 될까? 그것은 똑같이 물음표일까? 혹은 마침표일까.
– 박수정 (DCW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