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필드트립
2024.10.18.—20.
- 김여명, 김진주, 신재민, 유진영, 장혜정, 최빛나
- 경남 지역 비엔날레 및 전시 관람, 거제도, 한산도 지역 탐방
이번 필드트립은 창원조각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관람과 참여자들 사이 대화로 구성되었다. 평소 비엔날레라는 형식에 관심이 있었고 두 비엔날레가 전시를 이끌어가는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참여자들 간 대화에서 내가 비엔날레의 많은 역할 중 특히 해당 지역과 시민에게 기여해야 할 것이라는 전제를 강하게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아래에는 이 깨달음에 관한 작은 생각들을 적어 본다. ‘큰 사과가 소리 없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은 감동환 작가의 〈종이와 바위사이〉이다.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진(zine) 〈종이와 바다와 유리병 편지〉는 의식적인 내세우기 작업 없이 개인의 삶과 개인이 도시와 맺고 있는 기억을 진솔한 방식으로 보여 준다. 다른 한편 ‘어둠에서 보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부산비엔날레는 인류학자였던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에서의 깨달음이라는 관념을 토대로 공동체 밖에 위치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레이버가 펼쳤던 사유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었기에 기획 자체에 관심이 갔다. 잘 만들어진 전시 경험과 미적 경험이 일어나는 전시, 둘 사이의 차이나 전시를 평가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추후 DCW 2024 결과물로 만들어질 전시를 위해 구성원간 서로의 가치관과 작업관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 김여명
필드트립 일정을 구성할 때부터 여행이 끝나고 나서까지, 공동의 묶음 속에 들어오는 것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서울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6명의 큐레이터가 경남이라는 먼 지역까지 위치를 옮기고 몸을 이동해 가며 창원, 부산, 거제, 한산도를 밟아 가는 여정 자체에서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각각 지니는 시선의 차이, 개별성에 대해서 (서울에서 만났을 때보다도) 민감하게 감각했다. 동일한 공간, 장소 안에서도 각자 보는 것이 달랐고, 접근하는 방식이 상이했고, 기억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었다. 이렇게 관찰해 찍은 점 하나하나를 모아 자신만의 특수성을 만들고 그 특수성이 그러모아진 전시를 만드는 사람이 큐레이터라는 생각에 닿으며, 우리의 일은 이 사회에 (어딘가에서는 간과되기 쉽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개별 큐레이터의 일을 체감하는 한편, 창원, 부산의 두 비엔날레가 우리를 3일간 함께 움직이게 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는 점에서 비엔날레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삼 깨달았다. 창원과 부산의 전시를 보며 우리는 때론 논쟁 같은 토론도 했고, 농담에 가까운 진담도 나누었고, 아쉬움을 닮은 희망도 공유했던 것 같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기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수도권 외 지역에서의 대형 전시에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역할이었을까? 비엔날레라는 건 압축된 시간 동안 우리 눈에 밟힌 무수히 많은 시청각적 자극을 토대로 지금의 미술은 물론 사회까지 진단해 볼 수 있는, 어쩌면 단순한 작품의 현현이 아닌 복합적인 시대의 기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엔날레 투어에 이어 거제를 통과해 통영을 넘고 그 안의 작은 부속 섬인 한산도에 방문했던 날은,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뒤 오랜만에 찾았던 나의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이 되어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이곳에 다시 왔다는 점에서 생경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기획자인 나는 기획자인 사람들을 곁에 두면서, 한산도의 조그마한 마을과 너른 바다가 우리에게 모종의 전시로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라는 상상을 해 봤다. 그곳의 물 너울이, 방파제가, 놓친 물고기가, 문을 닫은 초등학교가, 아버지의 옥상 데크가, 마당을 비추는 LED 라이트가, 콘센트가 담긴 물가의 페트병이, 혹시 우리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도한 적 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이 자연과 마을 사람들이 같이 오래간 창조해 낸 조합이 건네는 화음을 들은 것도 같다. 도시에 익숙해진 사람치고 이런 낯간지러운 상상도 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이 경험이 다음 나의 전시에 자연의 모습처럼 은연중에 녹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 김진주
창원조각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를 함께 방문하는 경험을 통해, ‘비엔날레의 역할과 기능’, ‘비엔날레를 기획하기’를 주제로 함께 이야기하고, 초국가적인 동시대 담론을 다루면서도 지역성을 잃지 않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문신미술관에 마련된 자료실에서 이전 회차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었는데 이전 회차에서는 조각을 비교적 규모 있고 기념비적인 것으로 전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면, 이번 회차에서는 수평적이고 비물질적인 조각의 형태를 보여주었으며 마사 로슬러와 동시대 여성 예술가들의 작업을 경유해 여성과 노동, 공동체로 수평적 조각의 의미를 확장했다. 또한 조각의 어원이 ‘쓰기’에 있음에서 착안해 지역무크지 발간으로 풀어낸 기획에서, 전통적인 형식을 넘어서는 조각 매체의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극대화했다고 생각되었다. 개인적으로 동시대 일본 예술가들에게 관심이 많아서인지,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는 일본 근대 조각가의 삶을 참조한 구로다 다이스케의 영상작품을 꼽고 싶다. 권위 있는 일본 근대 조각가들을 귀여운 동물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그의 작업은 권위의 저변에 있는 무력감, 취약성, 개인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듯했고, 전통적이고 확고한 권위의 수직성을 해체해 수평적으로 눕힘으로써 기획의 의도를 잘 보여주는 작업이라 생각되었다. 한편 부산비엔날레는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라는 두 축을 통해 다문화적이고 관용적인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개별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미학적 실천을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키워드로 묶어내기를 거부하고, 그 개별성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기획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특히 부산의 지역 예술가들을 비롯한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지역⋅국가적인 논제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지역⋅국가의 작품들을 통해 각자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반영하면서 논제를 전개해 나가는 개별의 움직임을 초국가적 맥락 안에 위치시켰다. 개개의 작품이 하나의 포괄적인 의제 안에 묶이기를 의도하기 보다도, 오히려 그 묶음을 스스로 해체해 각 실천의 고유성을 존중하며 개별이 독립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주제를 강화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기획의 유연한 접근 방식이 돋보였다.
- 신재민